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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투명성
August 23rd, 2009 by Wegra Lee

나는 대기업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의 과제에 몸담고 있다. 연관된 내/외부 팀원만 하더라도 족히 5백은 넘을 듯 하고, 그 중 직간접적으로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백여명 정도 될 듯 싶다. 이런 규모의 과제를 진행하다보니 프로젝트 투명성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여기서의 프로젝트 투명성이란 프로젝트 계획, 세부 태스크, 진척도, 히스토리,  위험 요소, 가용 자원 현황 등 프로젝트 진행과 관련된 중요 정보들에 관련자들이 실시간으로 얼마나 쉽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우리팀의 수직적 계층을 대략적으로 구분해보면 ‘개발자, 중간 관리자, 상위 관리자, 경영진’ 정도로 나뉘는 듯 하다. 수평적으로는 협력 팀과 경쟁 팀이 있고, 경쟁 팀들의 수직적 구조는 우리 팀과 대동소이하다. 이러한 거대 조직에서 프로젝트 투명성을 제대로 지원해주는 어떠한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우리의 예를 일반화시켜 적어보겠다.

실시간 정보 공유가 어려우므로, 개발자는 중간 관리자에게 한 주 정도 간격으로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하지만 이 때 기입되는 태스크들의 의미를 전체 프로젝트의 관점과 연관시켜주는 인프라가 없다. 무언가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같으나 그것의 의미는 잡아내기 쉽지 않다. 중요하지 않거나 계획에도 없던 일에 과도한 시간을 투자하거나, 반대로 아주 시급한 일과 직결된 이슈 사항이 주목 받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진도가 계획 대비 얼마나 충실히 나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예정된 마일스톤에 납기가 가능할 지와 같은 정작 중요한 정보는 거의 포함되지 못한다.

중간 관리자와 상위 관리자도 보통 주 단위의 미팅을 갖는다. 개발자들로부터 받은 보고를 정리해서 공유하고 전체 일정 대비 점검하거나 큰 이슈들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진다. 개발자의 보고 내용이 필터링 되는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이고.. 더 큰 우려 사항은 앞서 이야기한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잘 캐취해 냈는가’이다. 중간 관리자가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중요치 않은 일이 부각되고 그 후속 조치로써 더 중요한 일에 투입할 시간마져 갉아먹게 된다.

이 단계에서의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가용 리소스와 각 태스크별 요구되는 리소스량에 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 없이 매니저들의 감과 욕심(혹은 바람)에 의존해 일이 계획된다는 점이다. 실무자가 보기엔 현재 할당된 일만으로도 일정 지연이 뻔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태스크들이 추가된다. 요구 일정에 맞추려면 실무자는 결국 대충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그 때 그 때 지뢰를 하나씩 매설해놓고, 제품은 점차 건드리기조처 겁이 나는 지뢰밭이 되어 간다. 심지어 기존 기능을 변경할 시에도 감히 현 코드를 수정하지 못하고 편접적인 방법으로 살짝 덧씌운다.

상위 관리자는 협력 팀이나 경영진들과 미팅을 갖고, 그 주기나 형태는 어떤 주제로 누구와 맞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까지의 논의가 주로 기술과 일정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기술은 쏙 빠지고 비즈니스 임팩트와 내/외부 경쟁에 대한 것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과제 방향이 확 틀어질 수도 있고, 경쟁에서 너무 밀릴 것 같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 상급 관리자들을 방어적으로 만든다.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문제를 최대한 숨기고, 작은 장점을 크게 부풀리고, 묘한 가정을 설정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추려 인용한다. 예를 들면, 여러가지 임시 방편과 제한된 시나리오로 간신히 데모 정도 돌리는 수준에서 마치 다 마무리 되어가는 듯 보고가 되고, 그 결과 추가적인 일거리가 생기고 과제 규모도 커져버리는 식이다. 추가된 업무에 허락된 리소스는 당연히 지금까지 잘 된(것처럼 보고된) 생산성에 맞춰져 있다. 일을 받는 입장에서 현실적인 리소스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 앞으로는 자신의 팀원들의 생산성이 훨씬 떨어질 것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펴거나 현재의 상황을 인실직고해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문제에 대해 상급 관리자가 파악하고 있는 수준 역시 현실과는 꾀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체제에서는 개발자들의 실력도 늘지 않아 경쟁에서 점차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좋은 개발자들은 기회가 되면 조직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 외의 악순환 얘기까지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투명한 프로젝트의 장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 째, 여러 단계에 걸친 보고 과정에서 낭비되는 고급 인력의 시간을 실무적인 문제 해결로 돌릴 수 있다. 어떤 정보를 공개할 지, 어느 정도로 포장을 해야할 지, 유리한 데이터는 무엇이 있을 지, 경쟁자보다 우월해 보이려면 다소 무리해서라도 어떤 기능을 더 넣어야 할 지 등을 찾고 고심하는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구글 직원의 블로그에서는 자신들의 리더는 약 20% 의 리소스만을 관리에 쓰고 나머지는 같이 개발을 한다고 하였다. 반면 비효율적인 기업은 상위 20%의 인력은 관리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고급 인력 한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는 저급 인력 몇 명을 투입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효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이런 효과는 팀 규모가 커지고 과제가 장기화될 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과제가 진행되면서 노하우가 전파되고 개발인력들의 역량이 향상된다. 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것이.. 실무에서 몇 년을 일한 프로 개발자들 중 아직껏 대학생 수준의 코드를 작성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투명성 부여 하나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분명 큰 효과를 발휘한다.

둘 째, 조직이 스스로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현실성 있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그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어느 시점에 어떤 역량을 더 키워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고, 이는 조직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 중 하나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경직된 조직에서 과제에 투명성을 부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깨어 있는 사람에 의해 위에서부터 도입되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나, 정보가 차단된 문화에서 그럴 필요성을 느낄 수나 있는가가 첫 난관이다. 반대로 아래로부터의 개선은 변화를 시도하는 팀에게 상당한 모험이 될 것이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과제는 여러 겹 포장된 과제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각종 문제들로 정신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 쉽다. 이런 현상의 진실을 경영진들에게 잘 납득시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과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다.

개발자들에게 오픈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 역시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실시간으로 공개가 된다는 것은 자칫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받는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쉽다. 실제 비공식적으로 도입해본 결과도 아랫사람들이 훨씬 적극적이며, 주로 위로부터의 말도 안되는 압박에 대한 방어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윗사람들이 하는 일도 다 같이 공개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마지막으로 그리고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정보 공개를 위해 귀찮은 추가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면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정보 누락이 발생한다. 부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생상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바보짓이다. 따라서 충분한 논의와 교육으로 가능한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좋은 자동화 인프라를 갖춘 후에 시행에 옮겨야 한다. 의욕만 앞서 무리하게 추진하면 부정적 인식만 남겨 도입 시기를 더 늦춰버리는 역효과가 나기 쉽다. 지금까지 자칭 SE 라는 조직에서 수없이 반복해온 실수들이 아닌가!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된 개발을 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답답한 마음에 두서 없이 적어본 프로젝트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참고로, 인프라 관점에서는 본격적으로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지는 아직 몇 년 되지 않아 제대로된 솔루션 중에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현 시점에서는 IBM Rational 의 Jazz/RTC 와 MS 의 Visual Studio Team System 2010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통합 환경에 비해 사용법을 익히고 관리하는데 더욱 많은 노력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별개의 여러 툴들을 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라면 개발 인력 5명에 3개월 과제만 되어도 이런 류의 인프라를 도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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